반올림하면 만원이 되는 영화 티켓을 구입해가며 그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사전정보가 필요합니다. 감독이 누구인지, 누가 출연하는지, 소설이나 만화 원작을 각색했다면 그 원작은 어떤 작품인지를 알아봐야 하고, 애니메이션이라면 제작사가 어디인지도 감독이 누구인지만큼이나 중요하며, 장르영화라면 짧은 트레일러나 소개글 가운데서 대강의 전개를 짐작해 영화의 재미를 미리 판단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도 미리 알면 재미를 잃게 될만한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회피해가며 정보를 수집해야 하지요. 사실 이런 정보조차 전혀 없이 제목이나 포스터만 달랑 믿고 찾아간 영화가 더 재밌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원작에 대해 거의 아는 바 없이 모 만화가님의 패러디 작품 하나가 몹시 즐거웠다는 점 하나만 믿고 보러 간 엑스맨이나 포스터에 필꽂혀서 봉준호 감독 작품이란 사실도 모르고 보러 간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가 그랬습니다.) 이런 정보를 꼭 수집해야 하는 이유는 역시 그 와중에 숨어 있는 지뢰들을 피하기 위해서지요. 오늘은 그런 정보들을 수집하지 못한 관계로 만나야 했던 두 편의 지뢰 중 첫번째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스포일러는 전혀 없고, 사실 스포일러가 될만한 꺼리도 없는 영화이므로 마음대로 공개합니다.

첫번째 지뢰는 실로 크고 강력한 것으로, 혹시라도 내려가기 전에 봐야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도시락 싸들고 찾아다니며 말리고 싶어지는 영화, 반 헬싱이 되겠습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영화관에서 영화 보다 말고 잠든 건 이 물건이 처음입니다. 같이 본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중반 삼사십분 가량은 자고 있었으며, 다종다양한 괴물들이 튀어나와 돌비 입체음향으로 소음을 뿌리는 영화관에서 그토록 잘 자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하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스토리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트란실바니아 성에서 닥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을 완성한 직후 실험의 스폰서인 듯한 뱀파이어에게 살해당하는 맨 처음 신과, 지킬 박사가 헐크의 체형을 가진 하이드로 변신하여 주인공과 싸우다가 싱겁게 살해당하는 그 다음 신을 목격한 다음, 위어울프가 등장하는 신까지 보고 나서 '아, 이 영화는 다 보았구나.' 생각하고 잠들었기 때문이지요. 대체 각본가는 뭘 믿고 저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소재들을 늘어놓는 것만으로 얘기가 진행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문제의 보우건을 자랑차게 손에 쥔 휴 잭맨.
머리를 길러서 그런지 울버린만큼 안 멋지군요.
출처는 영화 홈페이지

이 문제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정확히 말하면 잠들지 않고 본 2/3 가운데서) 제일 신경쓰였던 것은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바로 이 안일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의 무기입니다. (사실 오늘 포스팅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것 -_-) 방아쇠가 달린 활을 샷건처럼 쥐고 있으니 얼핏 보기엔 보우건인데, 밑에 원통형 화살 케이스가 달려 있지요? 생긴거에서 짐작하시는대로 저게 회전하면서 화살을 공급해주는 연발식 보우건인데, 문제는 슈슈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분당 100발쯤 되는듯한 무시무시한 속도로 화살이 발사되면서 저기 보이는 활줄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우건이 아니라 완벽한 자동소총의 모습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뱀파이어(아무리봐도 harpy 처럼 생긴)에게 쏴댑니다. 하도 웃겨서 포스팅하기 전에 홈페이지에 뜬 간략한 설정을 읽어보니 가스를 연료로 작동한다는군요. 가스가 동력이라는 건 다시말해 공기총이란 얘긴데, 공기총이 저런 고속 연사가 가능하기나 한가 싶기도 하고, 발사 메커니즘이 따로 있으면 활몸과 활줄은 대체 왜 달려 있나 싶기도 하고...

쓰다보니 삼천포로 빠졌습니다만,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모든 여름 블록버스터들의 수준이 함께 상승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히어로물들은 지뢰를 잘 살펴가며 밟아야 한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포스팅 예고 : 다음 포스팅은 지뢰 제 2호인 아이, 로봇을 올려볼까 하는데 그 전에 Cyberiad 시리즈 중 단편 하나를 올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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